저출산委로는 '국가 소멸' 못막는다

입력 2023-08-31 18:30   수정 2023-09-07 16:19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는 30명 안팎이 근무한다. 주요 정부 부처 1개 국(局, 통상 60여 명)의 절반도 안 되는 미니 조직이다. 이마저도 각 부처에서 파견돼 보통 1년~1년 반 정도 지나면 원래 부처로 돌아가는 공무원이 대부분이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전문성도, 소속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부처의 저출산 정책을 총괄하고 주도하기는커녕 한 해 50조원 넘는 저출산 사업(작년 기준)의 성과를 분석하고, 문제점을 바로잡고, 대안을 내는 일조차 어렵다.

올 2분기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저인 0.7명으로 떨어지며 ‘국가 소멸’ 위기가 눈앞에 닥쳤지만 저출산 대책의 컨트롤타워에 해당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과연 이 정도 조직으로 ‘인구 재앙’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정부가 인구 문제에 위기감과 절박감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국회 예산정책처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저출산고령사회위 사무처(현재는 사무국) 직원은 지난 5월 기준 26명에 불과하다. 인구구조 변화 대응 기획, 정책 분석과 중장기 전망, 저출산 대책과 고령사회 정책 기획 등의 업무를 30명도 안 되는 인원이 해내야 한다.

전문임기제 공무원 7명을 제외한 일반직 공무원 19명은 복지부 출신이 맡는 사무처장(현 사무국장)을 비롯해 모두 여러 부처에서 잠시 파견 나온 공무원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올초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1.3년에 불과했다. 이날 저출산고령사회위에 파견 발령이 난 기재부 A서기관의 파견 기간은 내년 8월 말까지로 1년에 불과하다. 정책의 연속성과 분석의 정밀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가 현 정부 출범 후 대통령 주재회의를 열고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와 인구정책기획단을 구성해 저출산 대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론 지금보다 집행력과 예산 조정권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4개 쪼가리 대책에 누더기 예산…'저출산 특단의 해법'이 없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는 문재인 정부 5년간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는 지난 3월 한 차례 열린 뒤 아직까지 후속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장관급)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운영위원회는 지금까지 네 차례 열렸지만 다른 공동위원장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운영위에 참석한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자문기구에 불과한 저출산고령사회위는 태생적 한계로 인구 위기를 총괄하는 데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실질적 권한이 없고 예산을 직접 집행하지도 못하는 데다 다른 부처를 조정할 힘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출산 대책 등을 총괄하는 ‘인구부’를 신설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조각조각’ 저출산 대책
당장 최근 발표된 내년 예산안만 해도 저출산고령사회위의 태생적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저출산 극복’ 관련 예산으로 17조5900억원을 담았다고 밝혔다. 예산안 중 ‘출산·양육 부담 경감을 위한 전주기 지원’ 항목에 포함된 사업 기준이다. 이 항목 예산은 올해 14조원이었는데 25% 이상 늘렸다.

부모급여 확대(만 0세 아동 월 70만원→100만원, 만 1세 아동 월 35만원→50만원), 신생아 출산 가구 대상 저금리 대출 자격 완화(부부합산 연소득 7000만원 이하→1억3000만원 이하), 신생아 출산 가구 대상 아파트 특별공급 신설 등의 대책이 담겼다. 그런데 이런 대책을 저출산고령사회위가 종합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복지부가 부모급여를, 국토교통부가 신생아 특별공급을 설명하는 식으로 각 부처가 따로 논다. 정책 수립 과정에 저출산고령사회위가 관련 부처와 협의하긴 하지만, 대책이 파편화돼 종합적으로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게다가 부처마다 저출산과 직접적 관련성이 작은 사업까지 인기영합식으로 이것저것 끼워넣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결정적 대책은 없고 ‘백화점식’ ‘보여주기식’ 사업이 난립한다는 지적이 많다.

예컨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학교 태양광 설비 설치를 지원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사업(1조8293억원), 군인·군무원 인건비 증액 사업(987억원) 등까지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돼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도 덕지덕지 붙은 ‘거품 예산’을 걷어내고 육아휴직, 보육지원, 아동수당 등 저출산과 직결된 예산만 따지면 지난해 51조원으로 잡힌 저출산 예산 중 38%인 19조5000억원 정도에 그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선진국처럼 저출산과 직결된 예산만 보면 한국의 저출산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2019년 기준)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29%)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가 그동안 저출산 예산에 300조원 가까운 돈을 퍼부었다고 자평하는데도 출산율이 계속 추락하는 건 이처럼 기존 저출산 대책이 핵심을 짚지 못한 측면도 크다.

이성용 한국인구학회장은 “저출산 대책에 수십조원을 썼지만 실제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을 찾기 어렵다”며 “한국의 현실과 직접 관련된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백화점식 대책을 지양하고 정말로 저출산 해결에 효과적인지 고민하고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산 영향력 높여야”
정부와 저출산고령사회위도 이 같은 한계를 인식하고 제도를 개편하고 있긴 하다. 지난 6월 기재부, 복지부와 함께 상시 조정 기구인 인구정책기획단을 출범시킨 데 이어 인구정책평가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평가센터에선 인구정책을 평가해 결과를 예산당국에 제시하고, 적정한 예산 편성을 권고할 계획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가 예산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제대로 기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김영미 부위원장도 올초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14개 저출산 대책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는지 확실하게 평가해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재부에 예산 증액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근본적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의 권한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상 정책 심의가 거의 전부이기 때문에 다른 부처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측은 “올 하반기에 관련 시행령 개정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강진규/허세민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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